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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항공지식

이란대사관 미국 인질 구출작전 Operation Eagle Claw

작전개요
Operation Eagle Claw(또 다른 작전명으로는 Evening Light 작전, Rice Bowl작전이라고도 한다)은 미국이 이란 미 대사관에 억류된 인질 52명을 구출하기 위해 1980년 4월 24일 감행한 군사 작전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지미카터 대통령으로 2010년 북한에 억류된 미국 기자를 데리고오는데 큰 역할을 했던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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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카터 대통령. 미국역사상 두번쨰로 연임에 실패한 대통령이다. 이란 인질 구출작전과도 연관이있었다. 하지만 퇴임 후 정치에 물러나 인권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였다>

이 임무에는 처음에 RH-53D Sea Stallion 8대의 헬기가 투입되었는데, 출발하자 마자 2대의 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임무를 포기하고 미항모 니미쯔로 돌아가면서 6대만이 임무에 투입되었다.
6대의 헬기는 Desert One이라고하는 이란내 임시 기지를 구축하여 착륙하였으나, 1대가 유압문제로 불가동 되어버렸다. 애초 임무에서는 6대보다 적은 헬기가 가동되면 임무를 취소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현장 지휘관은 임무 포기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구환을 위해 연료를 보급받던 헬기하나가 C-130과 충돌하여 완전 파괴되어버리고 8명이 사망하였다. 이 임무는 특수 임무 부대 델타포스에 의한 작전이었는데, 델타포스의 큰 오점으로 남게되었다. 어찌보면 작전의 실패는 항공기의 문제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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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니미쯔 항모에서 작전에 들어가기 전의 CH-53 대기 상태>

작전 준비
이 작전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미국에서 태평양과 인도양, 혹은 대서양과 아라비아를 건너야 도달할 수 있는 먼 지역이 이란이었고, 이 먼거리를 무급유로 왕복할수있는 항공기는 없었다. 중간 기착지가 반드시 필요한데, 당시 주변의 국가들은 미국의 비행장 사용 요구에 모두 거부한 상태였다. 또한 반드시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헬기가 투입되어야 특공대 투입및 구출된 인질을 재 탑승 시키고 빠져 나올수있었기 때문에 헬기만이 유일한 침투 수단이었다.

그리하여, 미국 정부는 2단계 작전을 준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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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작전은 C-130 허큘리스 수송기와 실제 구출작전에 참여할 8대의 RH-53D 시 스탤리언 헬리콥터를 보내서 이란의 사막 지역(암호명 Desert One)에 임시 기지를 설치하는 것이다. 이렇게 바다 밖에 있는 항공모함 니미츠호로부터 이란 내륙까지 들어가면 헬기는 연료가 바닥나게 된다. 그러면, 바로 이 임시 기지(Desert One)를 근거지로 버티면서, 그 동안 1대의 MC-130과 3대의 EC-130E 허큘리스 수송기로 운반해 온 물자(주로 연료)를 이용해서 연료를 보충하고 재정비를 한다는 것이다. C-130한대에는 약 6000갤런의 고무통 연료 적재가 가능하도록 개조하였다. 이란이 워낙 넓고 사막 지역이 많으니 특공대가 일정지역을 일정시간 점거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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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지역은 위 지도의 붉은색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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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은 오만에서 출발한 C-130 4대와 니미쯔 항모로 부터 출발하는 CH-53 8대가 이란의 사막지역인 암호명 Desert One이란 곳에 집결하는 것이 1단계 작전이었다>


그리고 두번째 작전은, 이렇게 재정비가 끝난 RH-53D Sea Stallion 헬기를 이용해서 같은 날 밤에 암호명 Desert Two라고하는 비밀 지역에 특공대를 태우고 이동한 후 헬기는 감추고 하루를 지낸 후 다음날 밤에 CIA의 지원하에 트럭으로 미 대사관으로 침투하는 것이다. 이란 경비대를 제압하고 인질을 구출하면 트럭은 대사관 앞의 축구 경기장으로 이동하고, 헬기는 축구 경기장으로 와서 대기하여 인질을 헬기에 태우고 테헤란 근교의 Manzariyeh 공군 기지로 이동을 한다. 이곳 이란 공군 기지는 이미 미 특공대에 의해 점령되고, 미해군 전투기의 엄호하에 C-141을 착륙시켜 구조대원과 인질 모두를 태우고 이집트로 철수 하는 것이다. 헬기로만 철수하기에는 너무 느리고 이란의 대공망에 격추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신속한 탈출을 위해 대형 수송기로 곧장 안전지역인 이집트로 향하는게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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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ert One 에서 전력을 재정비한 후 CH-53은 데타포스 팀을 태우고 Desert Two 지역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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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ert Two 에서 하루를 보낸후 델타포스 특수 임무팀이 트럭으로 인질이 잡혀있는 대사관으로 들어가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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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포스팀은 무력으로 대사관에 진입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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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을 구출하고 인근의 축구장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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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에는 Desert two에서 이동해온 헬기가 대기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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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53은 미리 미국 특공대가 점령한 이란의 공군 기지로 이동한 후 C-141에 인질과 병력을 태우고 탈출하는 것이다>

길고도 어려운 작은 전쟁 규모의 구출작전이라 할만한 계획이었다. 결국, 작전암호명은 "독수리 발톱 작전 (Operation Eagle Claw)" 으로 했고, 1980년 4월 24일 작전은 개시되었다. 작전 지휘관은 육군 소장 James B. Vaught였으며, C-130 고정익기에 대한 지휘는 Colonel James H. Kyle 대령이, 임무에 가장 필수적인 헬기에 대한 지휘는 해병대 Edward R. Seiffert 중령, 특공대 임무지휘는 Charlie Beckwith 대령이 맏았다. -나중에 각각의 지휘관이 분리된 지시를 한 것이 문제가된다.
 테헤란에 잠입한 CIA는 인질과 경비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고, 트럭을 확보하여 Desert Two에서 대사관까지 특수임무팀을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인질에 대한 정보는 대사관의 요리사가 작전 시작전 몇 시간전에 경비대에 의해 풀려나면서 CIA에 대부분의 정보를 제공하였다.
들어가기전 모든 전기를 차단하고 대규모 교전에 대비하여 AC-130 Gunship을 상공에 배치하기로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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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상황에 대비하여 대사관 상공에는 AC-130이 대기하기로 했다>

작전에 투입되기 3주전인 4월 1일 정보장교와 임무장교는 Desert One 사전 탐색하기위해 몰래 잠입했다. 그리고 지역을 야간에 항공기 쉽게 접근 할수있도록 원격 조정되는 적외선 라이트와 랜딩 지역을 표시하는 스토로보 라이트를 설치하였다. 항공기 착륙이 가능한지 확인을 위해 토양 샘플을 채취하였는데, 당시로는 충분히 착륙이 가능 한것으로 판단되었으나, 3주동안 불어닥친 모래바람으로 작전 당일에는 모래가 수십센티가 쌓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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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장교가 미리 비밀 착륙지역인 Deset One에 잠입하여 해당지역의 특성을 분석하였으나 이후 모래바람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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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동안 불어닥친 모래바람은 작전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사막지역의 기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었다>

C-130의 작전개시
구조팀과 장비, 연료를 탑재한 MC-130 3대, EC-130 3대가 작전에 들어갔다. 6대는 오만에서 이륙하여 이란으로 향했고, 이란 국경 바로직전에 KC-135로 부터 공중 급유를 받았다. MC-130 1호기가 22:45에 미리 설치한 적외선 착륙 시스템을 이용하여 불을 완전히 끈 상태로 착륙하였다. 착륙 시스템들은 야시경을 착용해야만 보였다. 하지만 1호기 착륙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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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에서 이륙한 C-130 6대는 이란 국경 진입전 KC-135로부터 공중급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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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에 한번도 착륙하지 않은 사막지역에 야시경을 낀채로 착륙하는 것은 아무리 베테랑 조종사라도 쉬운 것은 아니다>

날개가 땅에 부딛히는 심각한 손상이있었다. 나중에 사람들이 날개를 들어올리는 작업을 해야만했다. 다행하게도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다. 비행도 가능한 수준이었다. 델타포스 팀일부와 도로 차단임무를 맏은 특공대 12명, 일부 장비가 내려졌다. 여기에는 이란말과 페르시아언어를 구사하는 15명의 인원도 별도로 편성되었다. 이들은 언어 통역외에도 트럭 운전 임무를 맏았다. 1호기가 착륙 보조 통신 항법장치를 설치한 후 MC-130 2호기 3호기도 연이어 착륙하여 잔여 델타포스팀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23:15에 다시 이륙하였다. 연료 공급을 할 EC-130과 헬기가 착륙할 공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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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상황에서 MC-130 특수임무기와 EC_130등의 임무는 충실하게 수행하여 무사히 델타포스팀을 Desert One 에 내려 놓았다>

헬기 이동
 

<임무가 시작되고 헬기가 항모를 출발하고있다>

예기치 못한 기상현상이 발생하였다. haboob이라고 알려진 기상 현상인데, 사막지역에서 폭풍이 발생한 후 아주 고운 모래 가루가 공중에 남아있는 현상이다. 이 기상 현상으로 총 8대의 RH-53D Sea Stallion 중에서 2대가 귀환해야만 했다. 전체 계획도 50분에서 90분이나 지연되었다. 편대 비행을 하여 도착해야하는데, 서로 방향을 놓치면서 편대 대형도 흩어졌어나 다행하게도 모두 Desert One에 결함이 발생한 2대를 제외하고 집결이 되었다.
haboob가 발생하기 전 RH-53D 6호기가 회전로터 블레이드가 균열되었음이 확인되어 비상 착륙하였으며, 8호기가 인원을 수습하여 계속 작전을 수행했다. 5호기는 항법장치 고장으로 니미츠호로 되돌아 가야만했다. 25분만에 날씨는 다시 쾌청해졌다. 2호기는 착륙할때 유압문제가 발생하였다. 사실상 비행이 불가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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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CH-53 8대중 3대가 고장으로 비행불능에 빠지는 큰 난관에 부딛힌다>

경비
Combat Talon 1호기가 착륙하고 특공대들이 Desert One의 경비를 시작하고 얼마안있어 이란인이 탑승한 연료트럭이 이 지역을 지나가다가 이를 제지하는 미 특공대가 트럭이 멈추지 않자 견착식 로켓을 발사하여 폭발하였다.(아래 그림에서 4번) 이 화재로 수마일 밖에서도 현장이 보일수있게되었고, 이지역에 익숙하지 않은 헬기 조종사들이 육안으로 장소를 식별하여 착륙하게 해주었다. 트럭 운전수는 사망하였고, 동승자는 다른 따라오는 소형 트럭을 타고 도망쳐 버렸다. 보안에 문제가 발생하였으나 임무는 계속하기로 결정되었다. 폭발한 트럭은 기름을 훔친것으로 판단하였고, 통상 도둑들은 자신의 피해를 신고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발생하는 일련 작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연이어서 이란의 민간 버스가 43명의 승객을 태우고 Desert one 관통 도로를 진입하였다. 이 도로는 C-130에게 활주로 역할을 하였으므로 사람은 모두 수송기안에 감금하고 차량은 도로 밖으로 치워졌다.(아래 그림에서 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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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 취소
이제 5대의 헬기만 남았다. 이 5대의 헬기로 인원과 장비를 Desert Two로 운송해야만했다. 지휘관들은 더 이상 진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기 시작하였으며, 헬기 지휘관은 유압이 고장난 2호기의 복구는 불가능하며 Desert Two에서 또 다른 헬기의 고장이 예상되어 임무 취소를 결정하였다. 임무 취소 건의가 대통령까지 전달되었다. 2시간 반동안 현장은 긴장상태에 놓였다. 결국 백악관으로부터 임무 중지 결정이 승인되었다.

대참사
연료를 계산하다보니, 지상에서 아이들링 상태(시동을 걸고 지상에 있는상태)로 임무 취소를 기다리고 있던 EC-130의 연료량이 귀환에 충분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었다. 다행인지도 모르지만 헬기가 3대 불가동 되면서 가져온 연료에 여유가 있어서 EC-130의 화물칸 연료 1000갈론을 EC-130 내부 연료로 옮겼다. 그 와중에 EC-130 4호기는 벌써 헬기 3대에게 연료를 전부 나누어 주는 바람에 자신에게 재 보급할 연료가 없었다. 당시 C-130에는 자체 시동장비가 없어서 시동을 켠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으므로 4호기는 지금 델타포스를 태우고 이륙을 해야만 했다. EC-1304호기로 부터 연료를 받던 RH-53 4호기는 연료를 추가로 더 넣어야했으므로 반대편에 있는 EC-130에게로 옮겨야했다. 4호기가 건너가기 위해서는 연료 공급을 받던 3호기가 빠져야하는데, 3호기가 자리를 이동하기 위해 호버링하는 순간 강력한 샌드스톰이 불어서 조종이 불안해지면서 기체가 흔들려 RH-53의 로터와 EC-130의 수직 꼬리날개 부딛히면서 헬기는 EC-130날개와 충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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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RH-53과 EC-130이 충돌한 사진>

C-130내에있던 5명의 승무원과 RH-53의 해병 3명이 사망하였다. 2명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갔다. 헬기조종사들은 돌아 갈 수 없는 헬기를 전부 파괴하고 비밀 문서들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특공대 지휘관인 Beckwith 대령은 빨리 C-130에 탑승을 하던지 아니면 그냥 남아라고 지시하였다. 헬기 조종사들은 지시에 따라 C-130에 올랐고, 헬기는 거의 멀쩡한 상태로 전부 사막에 남겨졌다.
결국 나중에 이들 헬기는 이란해군이 5대를 고스란히 건져서 운영하게된다.
C-130은 병력을 실고 C-141이 대기하고있는 이집트로 귀환하였다. 부상당한 사람들은 독일로 후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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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소해 버린 EC-130, RH-53의 항공사진>

후폭풍
백악관은 다음날 임무 실패를 공식 발표하였다. 이란의 인질들은 다음날 이란내 여러 장소로 분산 수용되었다. 이란은 미국이 두번째 시도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이란 육군은 Desert one에 가서 9명의 시신(8명의 미군, 1명의 이란인)을 확인하였다. 억류되었던 이란인 44명의 증언도 TV로 방영되었다.

<이란에 의해 촬영된 사고현장의 비참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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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고위자들이 방문한 사고현장>

몇년 후 미군은 이 작전의 교훈으로 통합 특수작전 사령부를 창설하게된다. 이 작전에서 고정익 지휘관, 헬기 지휘관, 델타포스 지휘관 등, 상호 이해가 부족한 지휘관이 하나의 임무에 융합하지 못했던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항공분야로만 보면 MC-130과 EC-130은 어려운 여건에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였다. 육군의 특수임무 헬기 조종사는 별도의 야간 초저고도 침투라는 특수 훈련 프로그램이 마련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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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130과 MC-130은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해 주었다. 사진은 당시 작전에 참가한 EC-130>

두번째 구출임무(Credible Sport)가 계획되었다.
첫번째 임무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거대해졌다. 대대급 병력과 50대의 헬기, 긴급 활주로 개방을 위한 12톤 크기의 불도저, 수차례의 연습으로 엄청난 비용이 소비되었다. 헬기의 임무 거리 제한으로 말미암아 중간 기착지 없이 공중 급유를 통한 적지 깊숙히 침투하기 위해 고정익 수직 이착륙기 개념이 등장하였다 우선 고정익 수직 이착륙기를 MC-130을 이용하여 개조하기로하였다. YMC-130H라 불리운 이 수송기는 동체 외부에 여러개의 로켓모터를 달아 극도로 짧은 이착륙이 가능하였다 심지어 축구장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하였다. 3대의 MC-130이 개조되어 첫 시제기가 1980년 10월 Eglin Air Force Base에서 시험 비행을 하는 도중 충돌하여 큰 손상을 입게되었다. 로켓 점화 타이밍이 안맞았던 것이다. 다행하게 인원 손실은 없었다. 이 사고로 백악관이 구출작전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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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거리 이륙을 위해 C-130 동체 곳곳에 로켓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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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체에 수많은 단거리 이착륙용 로켓보조 동력장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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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수직 이착륙을 위해 이런 비행기도 구상하였다고한다>

하지만 군은 카터 대통령이 물러나고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면 다시 구출작전이 재개 될 수 있다고 보고 자체적으로 훈련을 계속하였다. 카터 대통령은 협상을 통해 인질 구출에 노력하였다. 카터는 물러나기전까지 인질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실제 인질이 풀려난것은 1981년 1월 20일 , 다음 대통령인 레이건 취임 이후로 그 공은 레이건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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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22의 필요성은 이란인질 구출작전을 평가하면서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장거리 수송기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탄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