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 폭격기는 B-52를 대체하기 위해 1970년대부터 개발된 전략폭격기다. 1호기는 74년 12월에 최초 비행에 성공했지만 카터 정권에 의해 77년 6월에 개발이 전면 취소됐다. 대량생산이 시작되기도 전에 개발 취소로 B-1이라는 이름은 역사 속에 묻힐 뻔했지만 레이건 정권이 B-1 폭격기의 부활을 결정해 지금의 B-1 폭격기가 탄생하게 됐다.
1974년 12월 최초 비행에 성공
80년대에 양산된 B-1B형은 70년대에 시제기만 제작됐던 B-1A형과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최대 속도와 스텔스 성능이다. B-1B는 스텔스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B-1A의 초음속 성능을 희생했다. B-1A의 공기 흡입구는 마하 2급의 고속 침투 성능을 얻기 위해 가변식으로 설계됐다.
반면 B-1B는 이를 고정식으로 바꾸고, 엔진 팬블레이드가 정면에서 보이지 않도록 설계해 레이더 단면적(RCS)을 감소시킬 수 있었다. 스텔스 관점에서 재설계가 이뤄진 덕분에 B-1B는 B-1A에 비해 레이더 단면적이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들게 됐다.
91년 초 발생한 걸프전에 미군 작전기는 대부분 참가했지만 주력기 중 유일하게 B-1B는 투입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B-1의 성능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걸프전 당시까지 B-1은 전술폭격 훈련을 실시한 적이 없어 갑자기 참전할 수는 없었다.
전략폭격 임무 시 B-1B는 AGM-69 단거리 핵미사일을 3개의 폭탄창에 총 24발, 기체 외부에도 14발을 탑재할 수 있다. AGM-86B 장거리 순항 미사일은 기내에 최대 8발 장착이 가능하다.
91년 9월, 냉전 해체에 따른 핵공격 태세 변화에 따라 B-1은 일반 폭격임무 수행도 가능하게 됐다. 일반 폭격임무에서 B-1B는 3개의 폭탄창에 500파운드 일반폭탄을 각 28발씩 84발을 탑재할 수 있다. 동체 하부에도 추가로 44발 탑재가 가능하기 때문에 B-1B의 500 파운드 폭탄 총 탑재량은 무려 128발에 달한다. 2000파운드 폭탄은 각 폭탄창에 8발, 외부에 14발 등 총 38발을 탑재할 수 있어 무려 34톤의 폭탄탑재량을 보인다. 이는 B-52가 베트남전 당시 폭탄 108발, 27톤의 무장을 탑재한 것보다 우수한 탑재능력이다.
그뿐만 아니라 B-1은 일반 폭격 임무에서 B-52보다 낮게 비행할 수 있고, 저고도 비행 시 기동성·탑승감 등도 B-52보다 우수하다. B-1B는 일반 폭격 임무를 수행할 때 과거의 중폭격기처럼 고고도에서 편대비행으로 폭탄을 투하하지 않고 단기로 초저고도로 침투해 폭탄을 투하한다.
지형에 따라 고도·속도 자동 조절
저고도 진입 시 고도는 60~100m에 불과하며 시속 920㎞의 속도로 비행한다. 비행 고도를 약간 높이면 시속 1000㎞ 이상, 단시간이면 초저고도에서 음속 돌파도 가능하다. 초저고도 비행 시 지형에 따른 고도와 속도는 자동으로 조절된다.
원래 B-1은 240대를 생산해 B-52를 대체할 계획이었지만 후속 기종이 B-2로 결정되면서 100대를 끝으로 생산이 종료됐다. B-1 폭격기는 B-2 스텔스 폭격기가 충분한 수량이 생산되지 못했기 때문에 후속 폭격기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미 공군의 실질적인 주력폭격기로 장기간에 걸쳐 운용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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