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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폭격기

전쟁 6주만에 200대가 격추된 비운의 경폭격기 Battle

Fairly 사의 Battle은 1930년대 영국에서 개발한 단발 왕복엔진의 경량 폭격기이다. 당시 롤스로이스사의 Merine엔진을 장착한 다른 전투기들도 많이있었는데, 유독 이 경폭기만은 실패작이었다. 전투기와 다른 점은 폭탄 투하를 위한 투하 전문가가 탑승하면서 3명의 승무원이되었고, 많은 무장을 하면서 무게가 증가되었으며, 저공 비행을 위해 동체 장갑이 증가하면서 동급의 전투기에 장착했던 소형엔진으로 동체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매 전투마다 동작이 굼떠서 쉽게 적의 표적이되었다. 게다가 행동반경이 줄었으며, 적의 대공화기에 매우 취약하였다, 2차대전이 발발하기전 포에니 전쟁에서 적의 전투기를 격추시키는 성과를 보였으나, 2차대전중에는 무참하게 패하는 역사적인 최악의 항공기로 손꼽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1940년대 2차대전중에 무려 임무에서 50%의 손실율을 기록하여 결국 1940년대 말에 이 항공기를 전투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하기도 하였다.

개발과정
Fairly Battle은 2인승 주간 폭격기로 개발되었고, 기존 복엽기 형태의 폭격기였던, Hawker Hart와 Hind 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시제기는 1936년 3월 10일 첫비행이 이루어졌고, 전세계의 긴장이 조성되자 생산 1순위가 되면서 2419대가 주문되었다. 1차 우선 생산량은 155대로 결정되고, 몇개의 공장에서 분산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Hawker Hart 폭격기>


<1936년 전세계의 긴장이 조성되자 생산 1순위가 되면서 2,419대가 주문되었다>

동체의 대부분이 금속으로 제작되어 튼튼하였으며, 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해 랜딩기어는 접을수있도록 하였다. 동체는 전체적으로 유선형을 유지하였으며, 폭격임무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조종사, 항법사, Gunner 로 구성된 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였다. 기총은 브라우닝 0.303밀리 기총을 기수부분에 장착하였으며 후방에는 전방에서 원격 조종이 가능하도록하는 Vickers K가 장착되었는데, 원격 조종 장치가 동체 중앙의 연료셀을 지나면서 연료 탑재가 줄어들고, 연료가 자주 새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230kg 의 투하 무장은 날개와 동체의 내부에 장착토록 되어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연료 탑재공간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승무원은 3명이고, 기총은 덩치에 비해 매우 초라하였다>

운영 경력

첫 대대는 1937년에 구성되었다. 몇달 후에는 Hawker Hurricane이 Battle과 동일 엔진으로 현역에 등장하기도하였다. Hawker Hurricane의 등장으로 2차 대전이 시작되자마자 Battle은 구형이 되고 말았지만, 영국은 적절한 경폭격기를 대체할 방법이 없어서 Battle 을 그냥 일선에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1939년 포에니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은 Battle로 구성된 10개의 폭격대대를 파견하였다. 1939년 9월 독일의 매사스미츠 BF 109 한대가 멋모르고 접근하다가 Battle의 기총 소사를 받고 추락하였다. Battle의 첫 격추기록이었다.

<Hawker Hurricane이 등장하면서 Battle은 곧바로 구형기가 되었다>

<독일의 BF 109>

하지만 사실 BF109보다 속도는 무려 160km/h나 느렸고, 기총역시 성능상으로 매우 뒤진 상태였다. 그러나 성능을 과신한 영국은 저공침투에 호위기를 붙이지 않고 임무를 감행하였다. 쉽게 이 기체의 성능을 간파한 독일은 대응책을 수립하고 있었다. 1940년 5월에 감행된 2차대전의 첫날 출격에서 첫 소티 8대가 출동하여 3대가 격추되었다. 두번쨰 출격에서는 24대중 10대가 격추되었다. 첫날에 무려 13대가 추락하였다. 나머지 살아돌아온 기체도 멀쩡한게 없었다.


저공 76미터로 진입하여 폭격을 무자비한 손실을 감수하면서 폭격을 가하였으나 독일이 입은 피해는 미미했다. 5월 11일 벨기에가 9대로 철교폭파를 위해 출격하였는데, 6대가 격추되었고, 같은날 영국에서 출격한 8대중에 오직 한대만 귀환하였다. 다음날 폭격 임무로 나간 5대중 4대가 격추되고 1대는 돌아오다가 착륙중 완파되었다.


이러한 전투결과에 놀란 영국공군은 급격하게 폭격임무에 투입을 심각하게 고민하게되었다. 하지만 대규모의 총공격에 폭격기가 모자라는 영국은 가용한 모든 Battle 폭격기를 다시 투입하였고, 독일 Pontoon 철교 폭파작전에 총 63대의 Battle이 투입되었다. 벌떼같이 공격하는 전술로 바꾸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공격에서 무려 35대가 추락하여 아까운 폭격기와 젊은 조종사의 생명을 앗아갔다. 결국 영국공군은 Battle은 적 대공포화를 피해 야간만 임무를 하도록 결정하였다.



<출격하면 50% 가까이 격추되는 이 폭격기는 젊은 조종사의 생명을 담보로하였다>

사실 독일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있어서 융커스 Ju-87 전투기 87대가 영국공격을 감행했다가 거의 반을 잃은 사례도있었다. 기존 Battle이 담당하던 임무는 Hawker Hurricane이나 Hawker Typoon, P-47 Thunderbolt 등으로 넘어갔다. 1940년 6월 15일 모든 Battle 기체는 영국으로 철수했다. 불과 6주만에 200대의 Battle이 격추당했다. 이중 99대가 불과 투입 초기인 5월 10일부터 1주일 만에 격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라는 긴급 상황에서 영국공군은 철수했던 Battle을 다시 전장에 투입하기도하였는데, 야간에 은밀하게 작전이 이루어져 격추는 없었다.


그외에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Battle의 일부를 넘겨받아 운영하였으며, 이탈리아 전투기와 공중 조우상황이 발생하였으나, 심각한 격추상태는 없었다. 아마 당시 이탈리아공군의 전투기 성능과 조종사의 기량과도 관련이있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마지막임무는 그리스에서 독일과 이탈리아 연합군을 향한 대지공격이었는데, 약간의 격추만 알려졌다.

이후 영국에서는 잔여 Battle을 이용하여 견인기, 타겟기, 훈련기 목적으로 사용하였으며, 일부는 캐나다, 호주 등지로 팔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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