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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기/미국실험기

활주로가 필요 없는 Zero-Length Launch Fighter

항공기의 개발사에서 보면 정말 기발한 여러 아이디어들이 나왔던 것을 알수있다. 그중 하나가 "Zero-length launch (ZEL)" 개념. 즉 이륙시 활주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륙방식이다. 물론 활주로를 필요로하지 않는 이륙방식은 수직 이착륙기도 있지만, 이 ZEL방식은 착륙은 기존방식으로 수행을 하기 때문에 활주로가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어느 장소에서도 이륙이 가능하고 신속하게 고도를 차지할수있도록 하기위함이 목적이다. 방법적으로는 이륙시 거대한 고체추진 로켓을 항공기에 장착하고, 이동식 트럭에서 발사(이륙?)하도록 한다.

1. F-84 연구기
냉전기간 동안 적의 비행장 무력화에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반면에 적의 아측 비행장 무력화에 대비하여 활주로 없이도 이륙 가능한 전투기 개발에 주력하였다. 이러한 연구중 하나는 수직 이착륙기(vertical take-off and landing : VTOL)로 flying pogos도 당시 나온 수직 이착륙기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수직이착륙 방식은 너무나 어렵고, 위험하였으며, 더 이상 진전을 가져올 만큼 가능성을 보지 못하였다.

<Convair XFY-1 Pogo>

또 다른 접근 방법중 하나가 기존의 항공기에 로켓을 장착하여 기체를 쏘아 올리는 것이다. 이 방식은 사실상 새로운 방식은 아니다. 2차대전이 종료 될 즈음에 이미 Jet-assisted take-off (JATO) 개념이 등장하여 한계치 이상의 중량을 실은 폭격기나 수송기의 이륙을 보조하기 위해 보조로켓을 달아 이륙하던 개념이있었다.

<미해군의 F-18 Blue Angels를 지원하는 C-130의 JATO를 이용한 이륙이다. 아직도 이 JATO는 특수 목적으로 매우 유용하게 이용되고있다>

 현재도 이런 개념은 단거리 이륙및 신속한 고도 확보를 지원하기 위해 최근까지도 사용이 되어왔다. 여기에 더 큰 로켓을 달기만 한다면 전투기가 활주로 없이도 이륙 할 수있을 거라는 생각은 누구나 생각 할 수있을 만큼 가능성이 충분했다. 더구나 1953년 대형 순항 미사일을 개발하면서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이륙에 성공하였다.

로켓을 이용한 전투기 이착륙 프로그램이 본격화 되면서 프로그램은 이름은 "Zero Length Launch / Mat Landing (ZELMAL)"이 되었다. 이륙만 활주로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착륙 까지도 (항공모함 착륙방식과 유사하게) 케이블을 걸고 곧장 바닥에 설치된 매트(길이 240미터, 폭 25미터, 높이 1미터)에 주저 앉는 방식을 채택하여 아예 활주로 없이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험은 1953년 12월부터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이미 성공한 적이있는 Matador 발사에 사용한 Rocket Assist Take Off 부스터와 트레일러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륙은 정말 신기할 정도로 간단하고 쉬웠다.

<B-61 Matador 미사일>

하지만 매트를 이용한 착륙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수대의 트럭으로 설치한 후 매트의 공기가 누설되어 수리를 보내야만 했다.

이러하기를 수차례, 매트를 이용한 착륙은 1954년 6월까지 시행하지 못하다가 드디어 F-84G에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하지만 arresting hook가 냐려진 상태에서 착륙하면서 Air Mat 를 심하게 찢고 흐트려 버렸고 비행기는 뒤집혀서 조종사가 심하게 다쳤다. 두번의 추가적인 시도가있었으나, 첫번째 시도 만큼이나 심각성을 인지하게되었다.


<Mat에 착륙한 F-84>

착륙 할 때의 조종사 자세도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떨어지는 항공기 자세로 인해 고개가 자기 가슴까지 내려오는 충격을 견뎌야했고, 중앙의 조종간도 조종사를 치명적으로 만들 위험이있었다. 한 조종사는 당시 목을 다쳐서 아직도 불구의 상태로있다. 이로서 Mat에 비행기가 착륙한다는 계획은 취소되고 말았으며 F-84G의 이륙은 총 28회를 수행하였다.


F-100/F-104 를 이용한 실험

비록 에어매트를 이용한 착륙에는 실패했지만 로켓을 이용한 이륙은 성공적이었다. 1957년 미공군은 로켓 이륙 시스템을 더 연구하기로 결정하고 핵폭탄을 장착한 전투기에 이 방식의 이륙을 적용하기로하였다. 핵폭탄을 장착한 전투기를 적 지역 가까운 곳 국경에서 발사(이륙?)하고 적 지역에 폭탄을 투하한 후 인근의 우호적인 국가 상공에서 비행기를 버리고 조종사만 착륙하는 방식의 공격 방법을 구상한 것이다. 약어로는 착륙방식을 제외한 ZEL만 사용하기로 하였다.

<F-100 전투기로 ZEL이 실험되었다. 무거워진 기체 중량으로 대형의 로켓이 장착 되었다>

 전투기로는 F-100 Super Sabre가 선정되었다. 하지만 문제가있었다. F-100의 무게는 F-84의 두배에 해당하여 정말 대형의 부스터 로켓이 필요하게되었다. 새로운 로켓은 로켓다인이라는 회사에서 별도로 제작되었고, 추력은 4초간 59톤을 낼수있었다. 발사시에 조종사에게 작용하는 중력가속도는 4G에 해당하며, 4초 후에는 항공기가 시속 450kM/h에 도달하고, 고도는 120미터에 도달하였다.

프로그램의 성공도를 높이고 실패를 방지하여 예산 삭감위험을 줄이기 위해 군은 "iron bird"라는 모형을 철재 프레임과 콘크리트로 만들어 실험을 수행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으며 실제 항공기 이륙도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만들었다.
실제 항공기를 이용한 첫번째 이륙은 성공적이었다. 조종사는 디즈니랜드에서도 이보다 더 흥미로운 놀이기구는 없을 것이라는 떠벌림으로 이 계획을 칭찬하였다. 하지만 두번째는 그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로켓 부스터가 항공기로 부터 분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조종사는 비행기를 버리고 탈출해야만했다. 원인 조사결과 절단되어야 할 볼트가 절단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다음에는 불트가 폭발력에 의해 절단되도록 개조하여 실험은 계속되었다.



<후방에 장엄하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결국 모두 돈, 즉 엄청난 예산의 결과였다>

이후 1958년 10월까지 14회의 이륙 시험이 더 있었다. 한번은 관계자들을 불러놓고 발사 시험이있었는데, 조종사는 계획에 없던 발사 직후 항공기 롤기동까지 선보여서 모두를 놀라게하고, 기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보다 다른 기술의 등장으로 프로그램이 종결될 처지에 놓이게되었다. 이미 대륙간 탄도탄의 실험이 1959년 초에 이루어지고, 적의 국경 근처에서 전투기를 발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썩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게 되었다.

<이륙에서 부터 로켓을 투하하는 과정의 연속 촬영>

1963년에는 독일의 루프트한자 항공사가 이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F-104G 한대를 개조하여 록히드사와 연구를 계속하였다. 당시 시험비행 조종사였던 락히드 직원은 F-104의 비행시험후 "조종사는 이륙 중 할 것이 없다. 그저 로켓 부스터 작동 버튼을 누르면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몇초 후에 조종간을 잡고 공중에서 기동을 시작하면 된다."라고하면서 조작의 부드러움과 항공모함보다 더쉬운 이륙체계와 편안함에 대해 극찬하였다.

하지만 이 체계는 다른 이유로 중단이 된다. 우선 너무나 발사 비용이 비싸다. 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로켓 구입비용이 연료 비용을 수십배 상회하고, 발사를 위한 군수지원체계가 나무 복잡하고 많은 인력을 요구하였다. 이렇게 거대한 군수지원 체계가 이동하게 되면 적에게 발각될 위험도 높아서 은밀성을 기할 수 없었다.

이미 영국에서는 VTOL기인 해리어가 개발되어 부스터 로켓 없이도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전투기가 개발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의 개잘 진전 없이 디즈니랜드의 가장 액티브한 기구보다 더 좋다고 평가한 ZEL 전투기는 연구단계에서 끝나버렸다.

<독일에서 시험된 F-104 ZEL 시험기>

<해리어의 등장이 ZEL 실험을 확실하게 종료시켰다>

소련의 시험

냉전시대에는 소련이 개발하면 곧이어 미국이 개발하고, 미국이 개발하면 소련이 곧이어 흉내를 내었다. 수직 이착륙기도 마찬가지며, 장거리 포격기 등이 다들 유사한 형태이다. 소련에서는 Mig-19를 이용하여 ZEL을 시험하였다. 당시의 Mig-19는 미국의 F-100에 대등한 성능을 보유하였었다. 하지만 운영목적은 미국과 달랐다.

소련은 미국의 핵 폭격기 공격에 대비하여 요격기로서 (활주로가 없는) 국경 근방에 전투기를 전방 배치하는 개념이었다. 개념의 구체화는 1955년에 Mikoyan-Gurevich (MiG) 설계국에서 담당하였고, 대상 항공기는 MiG-19로 지정하였다. Mig-19는 로켓부스터와 레일에서 발사 될 수있도록 구조를 강화하였고, 개조된 Mig-19는 명칭이 SM-30로 바뀌었다. 로켓은 F-100에 사용하던 로켓과 비슷한 60톤 출력의 PRD-22 고체 부스터를 사용하였다. 강력한 고체 부스터의 영향으로 발사대에는 많은 구름을 만들어내었고, 주변 비산되는 물질이 수마일 밖에서도 보이게 됨에 따라, 은밀성 유지를 위해 소련은 발사전에 로켓 화염이 닿는 부분에 땅을 파도록 절차화하였다.
계획이 수립되고 1년만에 최초 실험이 시작되었다. 무인으로 실험된 항공기의 발사는 순조로웠으나, 발사대는 후류 영향으로 파손되어버렸다. 발사대에 보호장비를 구비한 후 1957년 봄에 유인시험을 시작하였다. 기술자의 실수(내부 로켓 화약 충전 실수)로 최초 시험비행 조종사가 ZEL 비행 모의 연습중에 무려 18G가 가해진 경험이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륙은 매우 순조로웠다. 하지만 불비한 여건의 전방기지 활주로는 SM-30(Mig-19)에 적절하지 못하여 제동케이블(arresting-cable) 설치가 검토되기도 하였다.

미국이 ZEL Project를 취소하듯이 소련도 시간이 지나면서 ZEL 프로그램에 흥미를 잃기 시작하였다. 소련이 특히 관심을 잃은 것은 동서로 거대한 소련 영토에 ZEL 항공기 이륙을 위해 거대한 시스템들이 차량으로 움직이고 그 추운 동토에서 가동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 만만한 노력이 아니었다. 차량이동 경로에 있는 터널들을 모두 뜯어야 할 경우도 발생하였다. 소련이 애초 계획했던 미국의 전략 폭격기를 잡는다면 굳이 ZEL Project보다는 지대공 미사일의 개발이 훨씬 용이하다는 판단도 한 몫을 하였다.

참고자료 : http://www.vectorsite.net/avzel.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