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O에서는 Hind라고 불리우는 Mi-24는 구 소련에서 제작한 거대한 공격헬기이다. 아팟치와는 달리 병력 수송 능력도 있어서 8명의 전투 무장 군인을 수송할 수도있다. 소련에서 1972년에 첫비행을 한 후, 구 동구권 국가에게 다량으로 판매된 성공적인 헬기이며 다소 운영 기간이 오래되어 현재는 대체 기종으로 Ka-50이 2015년까지 교체될 것으로 전망한다. 약 250대가 생산되어 운영중이다.
동일한 기종이나 수출형으로 Mi-25, Mi-35로 명칭이 붙여졌으며, NATO에서는 단지 Hind D, Hind E로만 불렀다. 거대한 덩치 덕에 소련의 조종사들은 Mi-24를 날으는 탱크, 또는 날으는 악어라고 불렀다.
1960년대, Mil의 설계자는 향후 전쟁에서 육군보병의 기동력과 화력 지원이 지상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등장할 것으로 예견하였다. 1966년 Mil사의 미래 육상 전쟁 환경을 반영한 헬기 모형이 등장하였다. Mockup은 V-24로 불렸다. 처음에 이 설계를 할 당시 미국의 UH-1A 모형에서 출발하였다고 한다. 일단 8명의 무장 군인이 조종석 후방 캐빈에 탑승할 수 있도록 하였고, 동체에는 짧은 날개를 부착하여 기본적인 로켓 발사체계를 갖추었다. 랜딩 스키드에는 기관포를 부착하였다.
<병력 탑승공간>
Mil 는 Mock-up을 가지고 소련 육군에게 설명하러갔다. 하지만 소련 육군은 이런 비싼 무기체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강력한 보병 화기를 최우선 과제로 손꼽았다. 아무래도 헬기를 선정하면 공군이 차지할 것이 두려웠을 수도있다. 결국 소련 육군에서는 퇴짜를 맞았다. Mil사는 모형을 들고 더 높은 국방부를 찾아갔다. 국방부내에서는 전략적인 측면에서 검토가 시작되었으나 여전히 부정적인 의견도 높았다. 하지만 베트남전에서 미국의 전투 지원 헬기의 활약상이 두드러지자 점점 공격형 헬기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결국 Mi-24개발로 의견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Mil사는 기본 Mock-up을 발전시켜 단일 엔진을 사용하는 7톤 기체 모형과 엔진 두개를 얻은 10.5톤 기체 두 디자인을 내놓았다. 엔진은 1700마력의 TV3-177A turboshaft를 사용하였다. 이 두 모델에 대해 다시 Mock-up이 제작 되었고, 거의 같은 시기에 Ka-25도 저가를 앞세워 경쟁에 참가하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소련 육군은 두개엔진의 안전성을 내세워 대형의 헬기를 선택했고 여기에 회전식 건과 대전차 미사일 탑재등의 요구조건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1968년에는 육군 요구사항이 구체화되어 개발지시가 떨어졌다. 암호명 Yellow 24였다. 1969년 2월 구체적인 외형이 완성되고, 1969년 9월 호버링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1970년부터는 육군의 수락 기능점검 비행이 시작되었다. 육군의 많은 요구사항이 반영되면서 1년반 동안 많은 개조가 이루어졌다. 기골구조강화, 날개 처짐각도 변경, 진동감소, 피로감소 대책, 미사일 발사대 위치변경 등등의 육군 요구사항은 매우 까다로웠다. 육군의 요구사항은 양산형이 생산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1972년 첫 Mi-24가 육군에 인도되었다.
러시아는 현재 Ka-50 공격헬기와 Mi-28 Havoc 공격헬기를 개발하였다. 병력 수송 능력을 제거하고 훨씬더 날렵하게 제작되었다. 하지만 러시아 해군은 Mi-24를 교체하지않고 지속 운영할 것이라고 한다. 교체할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한다.
<대체기종으로 제시된 Mi-28>
대체기종의 하나인 ka-50
설계
Mi-24의 기본 시작은 Mi-8, Mi-14에서 출발하였다. 동체 상부에 장착된 두대의 터보샤프트 엔진은 17.3 m의 5엽 블레이드와 3엽의 Tailrotor를 회전시킨다. 공기 흡입구는 Mi-24의 상징적인 모습이 되었다. 최초에 생산된 Mi-24A형의 조종석은 아팟치처럼 온실의 유리처럼 각이진 형태였다. model D 형부터는 지금처럼 둥글게 구형으로 제작되었다. 후방석이 높게 설치되는 이유는 헬기 조종사의 시야를 좋게하기 위함이다. 짧은 날개는 무장발사대 기능을 한다. 물론 속도가 높으면 날개고유기능인 양력을 제공한다. 전체 양력의 25%까지 담당한다.
초기형의 캐노피는 아파치 처럼 각이진 형태다
동체는 방탄이되어서 12.7 mm탄이 어느 각도에서 맞아도 모든 동체를 보호한다. 조종석은 더욱 방탄이 강화되어 37mm탄 까지 방호가 가능하다. 지상 근접 작전을 고려하여 화생방 방호 대책으로는 캐빈내 공기압을 높여서 외부로부터 공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하고있다. 지상에서 헬기 착륙시 평탄치 않은 경우를 고려하여 랜딩기어는 동체가 수평이 될수있도록 스스로 높낮이를 조절하도록 되어있다.
세계 기록 수립을 위해 Mi-24가 개조되어 Mi-24B가 제작되었다. 속도 신기록과 상승율 도전을 위한 기체였다. 불필요한 상당부분의 구조물이 제거되었고 날개 까지 제거되었다. 1975년 1,000 km를 달리는 속도 기록에서 332.65 km/h 을 수립했다. 1978년에는 25km 단거리 구간에서 다시 368.4 km/h기록을 수립했다. 이 기록은 1986년 Westland Lynx헬기에 의해 깨질때까지 10년 이상을 유지해 왔다.
미국, 유럽식의 공격헬기와 비교
사실 공격임무와 병력 수송 임무를 동시에 하는 서구측의 헬기는 없다. 단지 베트남전에서 UH-1 (Huey)가 유사한 임무를 하였지만 사실, 휴이는 생산당시부터 두 임무를 할수 있도록 설계된 것은 아니며, 임무 수행에 따라 Gun은 필요에 의해 추가 장착된 것 뿐이다. 건을 추가 장착하면서 병력 수송 능력은 감소하였고, 연료 소모 속도 등에서 모두 감소해야했다. 반면 Mi-24는 설계시 부터 두 임무를 동시에하도록 설계되었다. 1980~1989년 동안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면서 Mi-24의 성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일부는 시콜스키 UH-60의 무장형이 병력 수송과 공격임무를 동시에 할수있다록 비교하지만 여전히 UH-60도 병력 수송을 주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단지 UH-60의 공격형 버젼인 MH-60L Direct Action Penetrator는 짧은 날개를 추가 장착하여 AGM-114 Hellfire, Hydra 70 rocket 등의 공격 무기를 발사할수있다.
<무장헬기의 시초 휴이 UH-1>
<MH-60의 무장헬기형 MH-60L>
<MH-60의 무장헬기형 MH-60L. 날개가 추가로 장착되었다>
실전 투입
Mi-24는 1977년 소말리아 전쟁(Ogaden War), 1978년 캄보디아-베트남전쟁에 참가하였고, 1987년 챠드-리비아 분쟁에서 리비아 공군이 운영하던 3대의 Mi-24가 포획되어 미국, 영국, 프랑스가 각각 한대씩 나눠가진 일도있었다.
Mi-24가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된 사례는 소련의 아프간 침공(1979~1989)때 였는데, 이때 아프간을 미국이 물적으로 도와주었다. 이미 미국은 Mi-24의 성능을 모두 파악한 상태였으며, Mi-24를 잡기 위해 열추적 스팅어(Stinger) 견착식 미사일을 대량으로 아프간에 공급하였다. 스팅어 미사일에 낙엽처럼 떨어질수 밖에 없었다. 이후 소련은 Mi-24에 Flare를 장착하고, 미사일 워닝시스템, 엔진 열 감소장치 등을 장착하였다. 여하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공급한 Mi-24는 전쟁중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아프간 정부군과 무하헤딘 게릴라와의 전쟁에서 Mi-24는 병력을 투하하거나 재 회수를 할때 더없이 좋은 헬기였다. 공격임무와 병력 투입을 동시에 할수있어 좀더 안전하고, 신속하게 작전이 가능했다.
주 무장은 80밀리 S-8 rocket, 57밀리 S-5 로켓, 23밀리 기총이다. 로켓은 Mi-24의 넓은 적재공간을 활용하여 추가로 싵고 다니면서 로켓을 다 쏘면 지상에 착륙하여 다시 재장전하고 이륙하였다. 심지어 폭탄까지 장착하여 최대 500킬로그램 폭탄 두발을 장착하고 투하도 가능하였다. 투하탄은 별도의 조준장치 없이 조종사의 숙련으로만 투하되었다.
소련이 아프간을 철수하고난후 상당수의 Mi-24는 미국으로 건너가기도하고 파키스탄으로 넘어가기도하였다. 일부는 소련의 지원하에 소련 국경 근처에서 몰래 운영되기도하였는데, 미국이 2001년 아프간을 다시 침공했을때 이들 Mi-24가 비행을 하기도하여 미국을 놀라게했다. 미국은 아프간에 친미 정부를 수립하고 Mi-24운영 경험을 인정하여 옛 소련 연방이었던 Czech 공화국으로 부터 6대의 Mi-24를 구매하여 아프간에 공급하였다.
이란 이라크전(1980~1988)에서는 이라크가 Mi-24를 운영하고 이란은 미국제 AH-1J를 운영하였다. 1980년 역사상 최초의 헬기간의 공중전이 벌어졌다. 이란의 AH-1J 코브라는 이란이 친미정부였던 시절 미국이 F-4, F-5. F-14를 팔았던 것과 같은 시점에 이란은 많은 미국제 무기를 운영했었다. AH-1J는 TOW 대전차 미사일 2발을 Mi-24 헬기를 향해 발사했고, 1대의 Mi-24는 현장에서 추락하였고, 다른 한대는 심각한 손상을 입고 기지로 귀환하던중 추락하였다. 이 사건은 1981년 4월에 또 한번 벌어져서 2대의 Mi-24가 추락하고 AH-1J는 전혀 손상을 입지않아 미국제 무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결과가 되었다. 이후 아라크는 전술을 연구하여 이란의 AH-1J를 다수 격추했다고 발표하였으나 몇대인지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서방에서는 총 6대의 Mi-24와 10대의 AH-1J가 격추되었다고 판단하고있다. 당시 이란에 무기공급이 중단되었으므로 아마 AH-1J의 미사일은 극히 제한적이었을 것으로 보고있다. 심지어 이라크는 Mi-24에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하여 이란의 F-4를 격추하였다고 주장하기도하였다.
이외에도 Mi-24는 1991년 걸프전에서 후세인의 공중전력으로 사용되었으나, 상당수가 포획되어 미국으로 넘어가거나, 이란으로 대피하여 이란에서 운영되기도하였다. 1993년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에서 크로아티아 정부군 소속으로 12대가 운영되었다. 1990년대 체첸과 러시아 전쟁에서 러시아 육군에 의해 운영되었다. 세네파전쟁(1995년), 수단 내전(1995-2005), 콩고 내전(1996-2003), 코소보전(1998?1999) 등에서도 참전하여 실전경력이 많은 헬기중 하나로 꼽힌다.
알려진바에 의하면 북한은 약 20여대의 Mi-24를 운영중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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