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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기

정권까지 바꾸게 한 Avro Canada CF-105 Arrow



Avro Canada CF-105 Arrow는 델타윙을 가진 요격기로 캐나다에서 개발되었다. 개발의 주 목적은 캐나다의 항공분야 선진기술력 획보와 항공학분야의 학문적 진보였으며, 항공기 개발을 통해 1960년대 이후 까지 자국방어 요격기로 운영한다는 목표아래 마하 2급, 고도 15Km까지 운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1958년 시험비행까지 이루어졌으나, 정치적인 관점에서 본 계획은 갑자기 중지되어 기체 및 엔진 개발은 중단되고만다.
갑작스런 개발 중단과, 기존 기체의 완전 제거라는 문제는 이후 정치적인 관점에서 많은 노란을 일으켰고, 역사가들이나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아직도 이런 저런 구설수로 등장하기도한다. "AVRO CF-105 개발의 중지는 AVRO회사를 몰락하게 만들었고, 당시 항공분야에 근무했던 상당수의 우수 연구자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캐나다 항공산업은 더 이상 없었다. 마치 캐나다 항공산업의 종지부를 찍는 사건이었다"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설계 및 개발 과정

2차대전 이후 소련은 고속, 고공 비행이 가능한 전략 폭격기를 개발하여 유럽을 건너 북해를 건너 캐나다와 미국의 주요 시설이나 군사 기지를 폭격하는 위협 수준이 매우 증가하였다. 2차대전 연합국측들은 이들의 전략 폭격기를 원거리에서 차단하기 위해 고성능의 요격기 개발에 집중적인 연구와 투자가 진행되었다.
이에 캐나다는 1946년 독자적으로 첫 제트 전투기인 Avro CF-100 Canuck을 생산하기에 이른다.

<Avro CF-100 Canuck>

 하지만 잦은 문제점을 일으키며 7년간의 시험기간을 거치면서 1953년 현역에 투입되었다. 동종의 기체중에서는 상당히 오랜기간인 27년 동안, 1981년까지 각종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CF-100의 7년간 시험기간 동안 소련의 항공력은 나치의 항공력을 바탕으로 급속하게 능력이 향상되어 CF-100 방어 범위를 뛰어넘게되어 CF-100을 이어갈 새로운 성능의 요격기가 필요하게 되었다. 비록 CF-100이 아직 취역도 하지 않았지만 CF-100을 대체할 초음속, 미사일 장착 전투기 개발을 이미 시작하였다. 캐나다 공군은 차세대 요격기의 성능 요구사항을 1952년에 작성하여 Avro Canada로 제시하였다.

당시의 엔진 기술로 사실상 음의 장벽(sound barrier)을 넘는 것은 과학자들 사이에 불가능하였다. 1946년에 X-1 실험기가 로켓엔진으로 마하돌파를 하였지만 제트엔진으로는 아직 그만한 추력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이 독일의 항공학자로 부터 나왔다. 독일 연구 자료에 따르면 기존의 양력을 높이기위한 두꺼운 날개는 초음속 비행에 부적합 하며 음의 장벽을 넘기위해서는 날개를 매우 얇게 제작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날개를 얇게 할 경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데, 날개가 구조적으로 약하고, 날개 내부에 연료 수용이 줄어들어 비행시간과 항속 거리를 줄어 들게하고, 무장 능력을 감소 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에 또 하나의 획기적인 항공설계 개념이 도입되었다. 바로 델타익이다.

델타익은 날개 후퇴각을 매우 크게하여 초음속시 기수부분에서 발생한 초음파가 날개에 닿지 않도록 하는 장점 이외에도, 날개 면적을 크게하여 연료를 충분하게 수용 할 수있도록 하며, 천음속, 초음속 모든 영역에서 안정적이고, 구조적으로도 튼튼하여 무장을 많이 장착할수있었다. 더불어 날개면적 증가와 함께 양력이 증가하여 기동성도 우수하였다. 개발자들은 이 원리를 CF-100의 일부를 개조하여 CF-103이라부르고 이 항공기의 비행을 통해 이들 이론을 검증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급 강하중에는 초음속에 도달하기도하였다.

<CF-103>

 하지만 모든 기술에는 장점만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고도, 저속에서 저항이 높았고, 저고도 공중전에서 기동력이 다소 저하되었다. 하지만 고공, 고속 요격기로서는 이 정도의 단점은 별 문제가되지 않았다.

C-103 실험기를 이어서 델타날개를 가진 개념 실험기로 단발엔진의 C104/4, 두개의 엔진을 장착하는 C104/2가 제시되었다. 두 모델의 성능에 대해 공군측과 AVRO측의 연구 끝에 두개의 엔진이 신뢰성이 높고, 초음속 돌파에 유리하다는 결론을 얻고는 두개의 엔진을 장착한 제안서가 1952년에 캐나다 공군에서 최종 선택되고, 1953년에는 Specification AIR 7-3으로 구체화되어 제안되었다.

이때 제안된 성능 요구사항은 2인승, 엔진두개, 최고속도 마하 1.5, 항속거리 560Km였다.
제작사인 Avro는 1953년 5월 C104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C105를 제출하였다. 가장 큰 변경사항은 날개의 위치였다. C104연구 단계에서는 델타익이 동체 하부에있었으나, C105안에서는 날개가 동체 상부에 위치하였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제작이 더욱 용이하고 구조적으로 튼튼하다고 설명하였다. 반면에 랜딩기어가 길어지면서 새로운 난해한 설계요구사항이 추가되었다.

당시기술로는 어쩔수가 없었던 얇은 날개의 구조적인 취약과 속도문제로 공대공 무장들은 동체 내부로 수용하였다. 더구나 당시로는 초음속 상태에서 무장을 발사할수있는 능력이 안되어 굳이 동체 외부에 무장을 장착할 필요가 없었다.

1953년 6월에 캐나다 공군은 avro사 방안을 수용하고 프로젝트명 CF-105의 추진을 2700만 달러로 승인하였다. 소련이 M-4 Bison 제트엔진 폭격기를 취역시키고 수소폭탄을 개발하자, 캐나다는 이 프로젝트를 서둘러 수행하기로하고 개발비용을 캐나다 달러 2억6천만 달러 승인하고 시제기 5대 제작을 지시하였다. 여기에는 조기 취역을 위한 35대의 실 임무기, 엔진 개발, 레이더 개발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신속한 배치를 위해 개발과정과 양산과정을 연결하여 개발과 동시에 양산이 이루어지도록 모든 제작 라인을 설치하였다. 양산 1호기가 바로 시제 1호기와 동일한 기체가되는 것이다. 물론 실패에 따른 상당한 위험 부담을 안고가는 것은 분명하다. 실험동안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미리 투자한 양산 생산라인의 손실은 당연한 것이지만 성공 할 경우 곧바로 생산으로 이어지므로 조기 전력화의 장점은 있다. 당시 캐나다 공군은 소련의 위협으로 부터 국가의 생존차원에서 결정한 것이다.

<소련의 M-4 Bison 제트엔진 폭격기>

1954년 중반에 설계도가 나왔고, 이 도면을 바탕으로 미국에서는 당시 슈퍼컴을 이용하여 시뮬레이션을 통한 안정성 검증이 이루어졌다.

여러 풍동시험과 미공군의 도움으로 조금씩 설계가 변경되었으나 많은 비용을 수반하거나, 생산일정에 차질을 가져오는 변경은 없었다. 그중 가장 큰 변경은 미 항공우주연구소 NASA에서 확인된 초음속을 위한 Area Rule이었다. 면적법칙(Area Rule)로 인해 레이돔과 Tail 부분, 공기 흡입구, 날개 접합면 등에 설계변경이 가해졌다.
비행조종시스템에는 당시로는 놀랍게도 초보적인 fly-by-wire system이 장착되었다. 설계당시 이 거대한 전투기에 얇은 날개까지 막대나 케이블 형태의 조종 시스템을 넣기가 어려워 채택한 전기방식의 조종시스템이었다. 심지어는 조종사가 조종간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조종면에서 생성된 back-pressure를 유압으로 재생시켜 인공감각을 만들어 내는 기술도 세계 최초로 적용하였다. 당시로는 정말 놀라운 기술이 아닐 수 없다.

계획의 취소
캐나다는 1953년부터 보수 진보성향의 정당이 집권하였는데, 회사의 인수합병을 주도하고, AVRO사를 국민의 세금과 돈먹는 괴물로 칭하면서 에너지 회사로 합병시켜버렸다. 1957년에는 미국과 미공군이 주축이되는 북미방공 협정을 맺으면서 미국은 캐나다에 소련의 핵폭격기를 요격할수있는 대공 미사일 체계를 제공하게되었다. 캐나다 입장에서는 이 미제 방공 미사일 시스템이 너무나도 값이 싸고 효과적이었다.
결국 1958년 8월 11일 의회는 CF-105프로그램 취소를 국방부에 요구하고 국방부는 수차례 거부하였으나 9월에 최종 수락하게되면서 획기적이었던 CF105프로그램은 종지부를 찍게되었다. 1959년 2월 20일에는 캐나다 총리의 CF-105와 엔진 개발을 중지한다는 공식발표가있었으며 이날을 캐나다에서는 항공산업에 비수를 꽂은 검은 금요일로 말하고있다.

취소 결정이 있은 후 이 프로그램에 사용되었던 모든 장비와 10대의 완성된 시제 항공기, 엔진 등은 모두 폐기 처분하라는 지침이 하달되었다. 그 이유는 AVRO CF-105에 사용된 기술이 워낙 우수하여 소련으로 그 기술 유출을 막고자 함이었다고 발표되었다. 이때 파손된 항공기는 다시 복구할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파손되었다. 이 분야에 종사했던 AVRO사의 25명의 엔지니어들은 나사로 들어가 유인, 무인, 우주 분야에서 일하게되었으며 그외의 다른 엔지니어들도 영국이나 프랑스 등지로 옮겨갔다. 캐나다로서는 항공분야의 석학들을 잃어버리는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캐나다는 1961년 CF-105를 대신하여 미국과의 북미방공협정의 한 부분으로 66대의 F-101을 도입하였다. F-101은 AVRO CF-105 프로그램 전에 도입을 검토했다가 취소한 기종이었다. 하지만 CF-105의 취소 후에 도입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파손된 일부의 부품들, 조종석, 랜딩기어, 날개일부 등은 보존이 되어 캐나다 항공 박물관에 전시되고있다. CF-105사업을 취소하고 F-101을 도입했던 진보보수 정당은 1963년 본 사건으로 말미암은 국민 감정으로 물러나고 만다. 비행기 개발을 중지했다가 정권까지 물러나게 한 항공분야의 거대한 사건이었다.

많은 항공분야 전문가들은 당시 제작된 AVRO CF-105는 미국, 영국, 소련을 통 틀어 가장 진보되고, 성능적으로도 최고의 전투기가 되었을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으며, 항공사의 큰 도약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Arrow는 전투기중에서 가장 큰 전투기 중 하나이며, 1960년대를 통 틀어 가장 가공할 만한 성능의 전투기였다.
길이가 무려 23.7미터로, Mig-25의 20미터 보다도 훨씬 크다.
날개 폭은 15미터로 Mig-25의 14미터보다 더 크다.
기념비적인 이 항공기는 각종 데이터를 기초로 복원되어 외형적으로 완성품으로 캐나다 항공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