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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기

2차대전 말, 독일의 로켓 전투기 Messerschmitt 163 Komet

Messerschmitt Me 163 Komet은 Alexander Martin Lippisch가 설계하였으며, 로켓으로 추력을 생성하는 전투기이다.
2010년 기준으로 로켓으로 실전에 참여한 전투기는 Me163이 유일하다. 당시로서 성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메사스미츠 시험비행조종사 Rudy Opitz 는 시속 1,123 km/h (698 mph)에 달했는데, 당시 음속 돌파여부가 불확실하다. 만일 음속 돌파를 하였다면 세계최초의 음속돌파는 X-1이 아니라 Me-163이 된다. X-1의 음속 돌파는 1947년에 이루어졌다. 300대 넘게 제작되었지만, 로켓엔진 전투기의 최대 약점인 체공시간 문제로 실제 이 막강한 성능의 전투기는 연합군 전투기 9대를 격추하는데 그친다.


개발과정
당시 독일에서는 할공 비행기 연구가 한창이었는데, 할공 연구소에서 만든 글라이더 비행기 DFS 39에 작은 프로펠러 엔진을 얹은 DFS 194가 개발되었으며, 비록 엔진을 탑재를 하여 수직 꼬리날개가 추가 되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전익기 형태의 글라이더 형상을 이어받았다.
이륙 할 때는 Dolly라고 하는 바퀴를 동체 바닥에 깔고 이륙하게되면 떨어져 나가게 되어있었으며 착륙할때는 스키 같은 것이 동체에서 나와 잔디같은 곳에 미끄러지면서 착륙토록되어있었다.

<Me 163의 가장 근본 모델인 글라이더형 DFS 39>

<이륙을 하면 바퀴는 동체에 고정되지 않아 그냥 지상에 남는다>

<DFS 39에서 엔진을 추가한 DFS 194. Me 163의 형상과 거의 동일하다>

당시 헤인켈사는 헬무터 워터와 함께 로켓엔진을 연구를 하여 개발했지만 독일에서 채택되지 않았던 He 112에 장착하여 비행 시험에 성공하면서 세계최초의 로켓 비행체가 되고 로켓을 장착한 이 항공기는 공식적으로 He 176이란 명칭을 얻게된다.

<He 112의 기수 프로펠러를 제거하고 투명 유리창을 설치하였으며, 꼬리날개 부분에 로켓 분사구가 보인다.>

<He 176의 제트 추진 지상 실험>

<He 176의 비행모습. 최초의 로켓 추진 항공기이다..

로켓엔진 전투기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헤인켈사와 독일공군은 글라이더 항공기로 개발되어 왕복엔진을 장착했던 DFS 194에 로켓엔진을 장착하기로 결정하고 Project X를 가동하게된다. 우선 그들이 해야할 일은 로켓엔진의 연료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당시의 로켓연료는 매우 불안정하여 지상 취급중에, 또는 비행중 기동중 폭팔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체분야를 담당했던 팀 리더인 Lippisch는 헤인켈사와 불협화음으로 팀원 전원을 데리고 메사슈미츠사로 들어가 메사스미츠와 일을 하게된다. 당시 정부 조직의 한 부분이었던 할공연구소에서는 로켓엔진에 적당한 기체를 개발할 능력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헤인켈사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의 신속한 진행을 위해 결국 기체 제작 능력이 많은 메사스미츠와 일을 하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1939년 결국 로켓엔진 탑재가 가능한 DFS 194를 완성하게 된다.
1940년 초에 엔진과 동체는 결합되었고, 최초의 시험비행을 통해 550 km/h까지 도달하게되었다.

<DFS194에 로켓을 달고 시험운전을 준비하고있다.>

<DFS 194의 비행. 로켓분사 모습이 웅장하다>

 당시 신비에 가까운 이 로켓엔진 전투기를 비밀로 보호하기 위해 이미 메사스미츠의 일반 2인승 소형 항공기 개발 프로젝트인 Bf 163과 동일하게 처리했으며, 이로인해 Me 163이란 이름을 갖게되었고, 명칭도 Komet으로 부여되어 말그대로 혜성처럼 나타나 적을 무찌르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존재로 등장하였다.
1941년에는 로켓엔진을 개량하여 1,004.5 km/h 속도를 달성하였는데, 공식적인 증명이 불가한 상태로 이어져오고있다. 초기형 6대가 제작되었고 이를 Me-163A로 구분한다.

<초기 Me 163A의 형태는 매우 미끈하고 작은 형태였다.>

<Me 163A의 이륙을 위한 로켓 점화. 그냥 풀밭에서 이륙했다>

< Me 163A의 비행모습을 공중 촬영>

중요한 문제점 중의 하나는 속도와 무게 문제 해결을 위해 Me163이 활주로에서 떨어지면 랜딩기어도 함께 떨어져 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데, 떨어져 나간 바퀴가 다시 튕겨서 동체에 부딛히거나, 다른 항공기로 떨어져 가만히 서있는 항공기에 피해를 주거나 제때 떨어지지 않아 문제가 되기도 하였으며, 착륙시 스키는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여 조종사의 허리부상을 유발하기도하였다. 바퀴가 아닌 스키드이다보니 방향 조정이 안되어 착륙사고가 많이 발생하였다.

< Me 163A가 지상에 불시착한 모습.>

< Me163A의 불시착>

이래저래 착륙한 항공기도 신속하게 활주로에서 꺼집어 내기 위해 농사용 트랙터로 줏어 올리다 시피하여 많은 손상이 발생하였다. 또한 로켓파워는 한번 사용하면 다 소진 할 때까지 기다리는데, 이 또한 문제가 되었다. 착륙중 조종사가 잘못되어 다시 재 착륙 시도가 불가하다는 것이다. 항공기의 엔진 파워가 더 이상 없다보니 착륙은 잘되던 못하던 한번으로 끝내야하는 것이다. 초보 조종사는 전투중에 죽는것 보다 착륙이 더 어렵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 환경에서 비행반경은 40Km였다.

< 소로 활주로 이탈하고 있는 Me 163B >

<트랙터로 활주로에서 빠져나오고있는 Me163B>

이후 엔진의 개량과 기체의 개량이 이루어져 1941년 말경에 Me 163 B가 탄생한다. 이때 새 엔진에 새로운 로켓 연료가 사용되었는데, 이 연료는 오히려 추력만 강화하였을 뿐 더욱 불안정하여 지상에서 취급하는 정비사나 공중에서 기동중, 착륙중 폭발이 빈번하였다.
아무튼 전쟁이 독일에게 불리한 상황에서 B type은 400여대가 제작되고 30 mm 기총 2문이 장착되었다.

< Me 163A와 B Type비교. 뒤쪽이 B Type이다>

<Me 163 B type>

항공역학적으로는 leading edge slot과 날개에 elevon control surface(Elevator + Aileron)를 장착하여 비행중 안정성은 많이 향상되고 기동성이 증가되었다. 하지만 글라이더 기반으로 설계된 이 항공기에서 기존의 프로펠러 전투기에서 보이는 안정된 기동력은 아직도 묘연하였다. 그래도 당시 항공기 성능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속도와 고도 점유 능력에서는 동시대 프로펠러기를 훨씬 앞지른다. 지상에서 속도는 676 km/h까지 도달하고, 랜딩기어 격인 돌리를 제거한 후 수직에 가까운 70도 각도로 급 상승하여 연합군 폭격기 고도까지 순식간에 도달한다. 필요시 3분만에 지상 12Km까지 상승하여 위치 에너지를 확보한 후 급강하하여 속도 880 km/h 전후하여 적의 폭격기 및 엄호기를 공격한다. 어떠한 적(연합군)의 전투기도 이 속도와 고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Me163의 날개 조종면>

<주날개에는 Flap, Elevon, Leading Edge Slot 등 현대식 조종면을 모두 갖추었다.>


<로켓 추진력을 이용하여 신속한 고도를 차지하여 위치 에너지로 전투를 한다.>

 이 속도와 고도의 대단한 성능의 전투기에는 속도 때문에 발생하는 또 하나의 문제점이있었다. 적이 격추 시키기 어려운 만큼 Me-163도 적을 격추시키기가 어려웠다. 하나의 타겟을 어느 정도 홀딩을 해야하는데, 워낙 속도가 빨라 타겟 조준 사격이 어려웠다. 또 대형 폭격기를 격추시키기 위해서는 최소 5발이상의 타겟 명중이 필요한데, 워낙 빠른 속도로의 접근으로는 폭격기를 격추시키는 단계까지 가지 못하고 다시 지상으로 착륙해야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였다. 80 속도가 빠르면서 연합군의 폭격기도 놀랬지만 Me 163도 적기 조준에 매우 어려움이 많았다.


<속도가 빠르면서 연합군의 폭격기도 놀랬지만 Me 163도 적기 조준에 매우 어려움이 많았다.>

독일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Me 163이 적 폭격기 아래로 지나가듯 비행하면서 폭탄과 연료가 집중되어있는 폭격기 하부를 연속 공격할수 있도록 50밀리 기관포를 상방향으로 설치하였다. 순수하게 폭격기 공격용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조를 통해 성공한 것은 B-17한대를 파괴한 전과 뿐이었다.

비행시간이 8분에 지나지 않는 것도 항공기가 단순 지역 방어 개념에만 머무를수 밖에 없게하여, 더 많은 비행기 대수를 요구하게되었고, 공중 초계 등은 불가한 상황이었다.


<8분 뿐인 체공시간은 Me 163을 더 많이 제작 해야한다는 문제를 가져왔다.>

 메사스미츠사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두개의 로켓을 장착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로켓 하나는 이륙을 통해 속도와 고도를 확보하고, 추력이 상실되면 나머지 소형의 로켓을 사용하여 기동시간을 늘인다는 것이다. 1944년 6월, 2대를 개조한 Me-163에 대해 시험비행이 이루어졌다. 이때 1,130 km/h라는 속도 기록이 세워졌고, 이 속도기록은 척 예거에 의한 X-1의 1,434 km/h 비행기록이 있었던 1947년까지 유지되었다. 일부 항공학자들은 X-1의 비행기록은 공중에서 폭격기가 떨어뜨린 후 가속한 속도이며 Me163은 지상에서 이륙하여 도달한 속도로 속도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며 비교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Me-163 기록을 옹호하고있다.

<Me 163 사진중에 컬러로 매우 선명한 사진중 하나다.>

 이렇게 개선된 항공기는 Me-163C로 불리며 더 연장된 동체, 날개, 여압이 가능한 케노피, 고도성능 15.8Km, 엔진 작동 시간 12분으로 연장되었다. 시제기는 3대가 제작되었으나 한대만 시험비행을 하였고 나머지는 전쟁의 불안한 상황으로 뚜렸한 이유 없이 비행을 하지 못하였다.
메사스미츠의 생산능력 문제 등으로 인해 본 프로그램은 Junkers(융커스)사로 통째로 넘어가게되었다. 융커스사는 Me-163C를 바탕으로 개선을 시도하는데, 전쟁 말기 대량 생산을 목적으로 하청 업체가 각 Section별로 제작하고 최종 융크스가 조립하는 형태의 생산 방법 개선에 몰두하였다. 기본적으로는 Me-163C와 유사한 Me-263이 탄생하게되었다. 하지만 생산에 들어가기는 너무나 늦어버렸다. 전쟁이 종지부를 찍고 있었으며 Me263의 모든 기록은 러시아로 넘어가면서 Mig 항공사의 향후 전세계를 휘어잡는 항공 설계 및 제작사로 성장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미그사는 Me263 설계도를 바탕으로 1946년에 Mikoyan-Gurevich I-270을 완성한다. 하지만 이내 이어져온 제트엔진의 성공으로 이내 취소되고말았다.

<Me 263개량형>

<맨위 작은 것은 Me 163이며, 뒤쪽 오른쪽은 훈련용 복좌형 Me163S, 아래쪽은 Me 263이다.>

<Mikoyan-Gurevich I-270. Me263의 소련 복제형이다.>

운영사례
실전에 참가한 것은 1944년 부터였으며, 예견하고 목적한 바와 같이 극도의 고속도와 고도를 점유하여 급강하 하면서 적기를 공격하였고, 당시 연합군 전투기들이 아무런 손 쓸방법이 없었다. 당시 Me163 조종사들은 비록 연료는 속도 에너지를 이용하여 적지만 4번 정도의 공격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였으며 이 정도면 한대의 폭격기를 격추 할만 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2번이상의 공격은 어려웠다고 한다.
여압이 되지 않는 것도 작전에 제한을 주었다. 산소가 부족한 것은 그나마 산소마스크를 이용하였으나 고도 변화가 급변하는 상황은 조종사들에게는 꽤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조종사는 여압이 되지않는 이 기체가 급 상승, 강하를 계속하는데 고통을 호소하였다.>

 첫 실전 기록은 1944년 미공군의 두대의 B-17 Flying Fortress 를 공격하였으나 격추 기록은 확인된 바가 없다. 1945년 전쟁이 종료 될 때까지 총 격추 대수는 9대의 적 폭격기와 7대의 전투기를 격추한 것으로 확인되며 14대의 Me163도 격추된 것으로 나타나있다. 한 조종사가 3대의 폭격기를 격추시킨 기록도 있다.

연합군도 Me163의 성능에 매우 놀랐으나, 이내 대응책이 수립되었다. 먼저 Me163의 가장 큰 약점이 비행시간을 이용하였다. 몇분간의 공격이후 Me163은 저속으로 글라이더 비행만 해야 했으므로 이때는 연합군의 전투기에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연합군은 일부 전투기가 Me163이 출격한 기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착륙하는 Me163을 차례로 공격했으며 착륙 후 스스로 움직일수 없는 Me163을 공격하여 파괴하기도 하였다. 폭격기는 Me163의 작전반경이 40Km이내인점을 감안하여 비행경로에서 Me163을 운영하는 기지를 살짝 회피 하기만 하면되었고 비록 근접한다 하더라도 멀수록 Me163의 공격 회수는 격감하였으므로 비행경로만 잘 선택하면 충분히 회피 가능하였다.

< 지상에서 스스로 이동할수 없는 Me 163은 연합국의 공격기에 쉬운 목표였다.>

< 한차례 공격이 지나간 후 가까스로 피해를 모면한 Me 163 >

< 로켓 분사구 >

군수문제도 작전 능력을 저하시켰다. 400여대를 제작하였으나 로켓에 주입할 연료가 없어 상당수가 비행을 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1945년 5월 전쟁이 종반에 치닫고 Me163은 운영이 중지되고 세계최초의 제트엔진 전투기인 Me262로 작전을 변경하였다.
항공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Me163은 사실상 지대공 유도무기의 시초였다고 볼수있으며, 프로펠러 시대를 마감하는 서막을 알리는 항공기였다. 또한 유사한 무기체계로 이어지는데, 독일의 Bachem Ba 349 Natter나 Convair XF-92등도 Me163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고있다.

< Convair XF-92도 Me 163의 연장선상에있다고 평가한다.>

<Bachem Ba 349 Natter. 로켓을 이용하여 수직 이륙을 한다.>

< 전후에 약 30여대가 연합국들이 연구를 위해 가져갔고 현재 약 10여대가 전세계 박물관에 전시되고있다.>

Japanese versions
일본은 당시 독일과 동맹을 체결한 상태로 독일은 일본에 설계도와 함께 Me 163 한대를 보내게된다. 하지만 두대의 잠수함으로 분해해서 운송하던 중 한대가 침몰하면서 중요한 연료 펌프 등의 파트는 확보하지 못하였으며 자체 제작도 불가한 상태였다. 하지만 유여 곡절 끝에 미쓰비시사에서 Ki-200 Shusui 추수(추수:가을비)라는 복제기가 만들어져 비행을 하였으나 첫 비행부터 비행에 실패하여 비행기는 손실되고 만다. 해군용으로 J8M1 Shusui를 제작시도 하였으나 실제 비행기가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총 몇대가 만들어졌는지 알려지지 않으며 전후 2대가 미군에 의해 노획되어 미국내 항공박물관에 전시되었으나 현재는 한대만 전시되지있다. 1999년에 일본내 숲속의 동굴에서 또 한대가 발견되어 일본 항공자위대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 Ki-200 Shusui. Me 163의 복제기이다>

<항공자위대에 보관중인 복제기>

<만일 성공해서 날았으면 이랬을 것이다.>

재생산
실제 비행이 가능한 Me 163이 1994년에서 96년 사이에 Me 163 비행교육을 받았던 조종사가 복원제작하였다. 그는 제작후 EADS(유러 파이터 제작사)로 팔았다. 사실 복원한 항공기는 글라이더 비행만 가능하였다. 그후 XCOR Aerospace에서 실제 로켓 연료로 비행하는 Me 163 을 설계하여 안전을 보강하고, 랜딩기어를 장착하여 제작 할려고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환영하지 못하자 그냥 포기하고 만다.

<2007년 9월 글라이더 비행중인 Me 163 복제품.>


사진 모음





< 미군에게 노획된 Me 163 그래서 사진이 비교적 선명하다. >

<미군에게 노획되어 미군 본토 행거로 옮겨진 Me 163>



<출격전 대기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