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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기

나찌 독일의 스텔스 폭격기 Ho 229

Horten Ho IX (Ho 229, 또는 제작사의 이름을 따서 Gotha Go 229라고도 함)은 2차대전 후기에 완전한 Flying Wing 형태의 전천후 전투 폭격기로 등장한 놀라운 기체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현대의 B-2와 같은 전익기에 제트엔진을 장착하고. 고도 15Km에 달하고, 형태적으로도 현대 B-2에 적용한 스텔스 설계 였다.

<B-2 폭격기와 Ho 229이 나란히 비행하고 있는 그래픽>

1930년대 초기 Horten형제는 글라이더의 발전형태로 전익기에 매우 높은 관심을 보였고, 1차대전 이후 전투기 개발에 제한을 두었던 국제적인 협약 때문에 독일 정부는 민간의 글라이더 클럽에 비용 투자를 하여 항공산업을 발전시켜왔다. 호텐 형제는 글라이더는 기존 항공기의 불필요한 구조물을 제거하므로서 저항을 줄이고, 최소한의 파워로도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호텐은 글라이더를 발전시킨 Ho I을 시작으로 Ho IX 까지 개발하게된다. (거의 같은 시기에 전투기 형태의 Ho X까지 개발하였으나 전쟁이 종료되면서 실제 제작은 이루지 못한다)

1943년 독일의 공군 참모총장격인 괘링은 페이로드 1000Kg이상, 항속거리 1000Km, 1000Km/H의 트리플 1000 프로젝트 라는 요구사항을 내놓는다. 기존의 폭격기는 영국본토의 연합군 본부까지 폭격이 가능하였으나, 속도와 고도면에서 연합군의 요격기에 뒤쳐져 사실상 폭격임무가 불가하였다. Junkers Jumo 004B 제트엔진이 이러한 요구사항을 충족할 엔진으로 보였으나, 연료 소모가 높아 작전반경이 이에 미치지 못하였다.

  <Junkers Jumo 004B >

호텐이 구상하는 전익기는 바로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저항이 줄어들면서 엔진 효율이 높아지고, 속도와 연료 효율 모두가 트리플 1000 프로그램에 충족하는 것이다. 초기에 독일이 제안하였던 조건에서 기총을 추가 장착을 지시하면서 호텐의 설계안이 채택되고 제작에 들어갔다. 기총은 독일이 이 전익기의 탁월한 속도와 고도 장점을 살려서 자체 방어 능력을 부여 하고 장착 전투기로서의 역할도 기대했기 때문이다.

 

 <기총을 장착한 Ho 229>

Ho 229은 구조적으로 중앙 동체 부분은 금속 파이프를 용접하여 제작하였으며 양 날개는 나무로 제작하였다. 날개 표면(Skin)은 나무에 탄소를 스며들게하고 합판처럼 얇게 여러겹을 직각으로 붙여서 샌드위치처럼 만들었다. 현대의 베니어합판과 같은 형식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길이방향 기골(Spar)은 금속으로 중앙을 지나게하고 그 뒤로 조종면이 지나는 부분에 두번째 Spar를 설치하였다. 이 구조물은 나무로 날개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7G까지 견딜수있다고한다. 그 계산도 1.8의 안전계수(Safety rating, Safety Factor)를 적용했다고하니 실제 계산상으로는 12g까지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 동체부분은 금속제 파이프로, 날개부분은 나무로 제작되었다>

   <중앙 동체부분>

수직꼬리날개, 수평꼬리날개가 없으므로 전익기는 조종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있다. Flying Wing은 대부분이 같은 방식을 사용하는데, 엘레본(Elevon = Elevator + Aileron),과 Spoiler로 조종을 한다. Spoiler는 본래 Aileron의 보조역할로 만들었는데 날개 상부에서 저항을 만들어 기체가 방향을 전환 할 수 있도록 해주어 Yaw기동용으로 사용된다. (본래 정상적인 구조에서는 수직 꼬리날개의 Rudder가 Yaw를 담당한다)


동체로 접혀들어가는 랜딩기어, 랜딩기어에 연결된 착륙 감속 낙하산(drogue parachute), 사출좌석 등 당시로서는 첨단개념이 도입되었다.
엔진은 본래 BMW 003 jet engine을 사용하기로 하였으나, 개발이 미진하여 Junkers Jumo 004 engine을 장착하였다.

<Ho 229의 칵핏 내부>

설계자인 호텐은 설계시 부터 목재 재질의 재료를 광범위하게 선택하였는데, 이미 그는 목재가 레이더파를 흡수한다는 것을 알고있었으며, 특히 탄소를 흡착시킨 목재는 레이더파를 거의 반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설계에 적용하였다. 여기에다가 Flying WIng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부드러운 동체, 즉 Blended Wing Body가 형태적으로 레이더파를 거의 반사하지 않고, 제트엔진을 동체 상부에 설치하여 프로펠러처럼 대량의 레이더파를 반사하는 구조물이 없음에 따라 당시 레이더 기술로는 완벽한 스텔스 기술이었다. 노드롭그루만사가 2008년도에 호텐 229의 기체의 레이더반사율을 측정하였는데, 동일한 크기의 기체보다 약 40%의 반사율을 갖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목재 재질 선택은 레이더파 반사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노드롭 그루만사에서 반사율 측정을 위해 재생한 Ho 229>


첫번째 Ho IX V1은 1944년 3월 1일에 글라이더 비행으로 시험비행을 하였다.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후 호텐형제의 설계도는 Gothaer로 넘겨졌다. Gothaer팀은 사출좌석을 설치하고, 랜딩기어의 최고하중을 높였으며, 엔진 흡입구 모양을 변경하여 엔진 효율을 향상시켰다. 호텐에서 고타로 임무가 넘어온 주요 이유는 독일이 호텐 형제에게 미국을 폭격할수있는 새로운 Amerika Bomber 설계를 맏겼기 때문이다.
이후 Junkers Jumo 004엔진을 장착한 Ho IX V2가 1944년 12월에 등장하여 1945년 2월 2일에 첫 비행을 하고 18일까지 2번더 시험비행을 하였다. 이미 독일은 이 폭격기의 성능에 대 만족을 하여 40대의 생산 계획을 세우고있었다.

<시험비행 과정과(위) 이를 준비하는 정비사들(아래)>

염려했던 조종성능도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으며 그동안 호텐 Flting Wing 실험기에 충분히 경험했던 수준보다 양호하였다. 독일은 이 폭격기에 전투 성능도 실험하고 싶었다. 독일은 세계최초의 제트 전투기인 Me 262와 모의 공중전을 시험하였다. 결과는 Ho 229의 승리였다.

2월 18일 시험비행을 위해 이륙할 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륙후 45분후 고도 800미터 상공에서 Jumo 004 turbojet 엔진에 불이나면서 엔진이 정지하였다. 조종사는 엔진 하나로 고도를 높이면서 Air Starting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이 우수한 기체를 살릴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기체는 360도 회전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하강하고 지상에 충돌하였다. 엔진 화재로 조종석에 연기가 가득찾고, 기체를 살리려던 조종사는 사출을 시도하지 않고 연기에 질식하여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거대한 날개로 인해 수직 충돌은 모면, 조종사는 살아있는 상태였으나 2주후 사망하였다. 기체는 완전 파괴되었다.

문제는 엔진이었으므로 Ho229의 실험은 계속되었다. 전쟁의 양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신속한 개발이 필요, 곧바로 총력을 다하여 세번째 기체 Ho 229 V3 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세번째 기체는 1, 2호기에서 얻은 데이터로 더 크게 기체를 제작하였으며, 성능요구사항이 늘어나서 20밀리, 30밀리 기총이 설치되었다. 작업은 복좌형, 야간 임무형 시험기로 4호기 Ho 229 V4, 5호기 Ho 229 V5를 함께 제작에 착수하였고, 6호기 Ho 229 V6는 무장 투하 시험용, 7호기 Ho 229 V7는 조종사 훈련용으로 제작에 착수하였다.

전쟁이 종반에 달하면서 미국 정보부는 독일의 항공기 개발을 인지하고있었으며, 작전명 Paperclip으로 독일의 우수한 공학자들을 포섭하고 우수한 무기 체계를 미국 본토로 이동하는 계획을 시작했다. 미국은 이들 엔지니어들이 특히 소련에 들어가는 것을 우려하였다. 전쟁 직후 3호기가 거의 완성단계에 있었는데, 이들 기체는 미국이 가장 먼저 입수하고 노드롭사로 옮겼다. 노드롭은 당시 미국 항공분야에서 Flying Wing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있었다. 노드롭의 Flying Wing 기술은 사실상 호텐형제의 Ho 시리즈에서 배웠으며(전쟁전 노드롭은 호텐 4를 구매하였다), 그 기술을 바탕으로 1939년에 미국 최초의 flying wing 기체인 N-1M을 제작하였다. 이후 N-9M을 제작하고, XB-35, XB-49에 이어서 결국 현세기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히는 B-2 폭격기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최고의 항공기술로 찬사를 받는 B-2폭격기도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Ho 229의 기술을 이어받았다.>

<미국이 전쟁이 종료되면서 독일로 부터 가져간 Ho 229 3호기. 미국본토에서 하역작업을 하고있다. 이 기체는 노드롭사로 보내져서 노드롭사는 이후 전익기 개발에 선두 주자가 된고 결국 대당 1조원의 B-2를 제작하기까지 이른다.>

미국이 가져간 3번째 기체 Ho 229 V3는 미국 Smithsonian 항공 박물관에 보관되어있었다.
Northrop-Grumman 연구진들은 Ho229에 대해 매우 관심이 높았아 1980년에 이 기체를 연구하기 위해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B-2 개발에 필수적인 사전 연구 단계였다. 2008년에는 National Geographic 채널에서 Ho 229의 세계 최초의 진정한 스텔스 전투 폭격기임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노드롭은 Ho 229의 스텔스 성능에 대해 시험하기 위해 완전한 기체를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내셔널지오그라픽에서 Ho 229을 재생하여 레이더 반사면적을 측정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당시 사용한 접착제, 도면에 의거한 형태 복원 등이 정밀하게 진행되었다. 비용은 25만달러, 총 인시수는 2,500 인시수가 소요되었다. 복원된 기체는 노드롭사의 캘리포니아 레이더반사 시험장에서 이루어졌다. 높이 15미터의 기둥을 세워 꼭대기에 Ho 229을 얹고, 여러방향에서 2차대전 당시 영국군이 사용했던 레이더파를 발사하였다. 그 결과 얻은 것은 당시의 동일 크기의 폭격기에 비해 약 40%의 반사율을 보이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완성된 기체는 샌디에고 항공박물관에 기증되었고, National Geographic 방송은 2009년 6월 28일에 방송되었다.

<레이더 반사면적을 측정하고있다>

<완성된 Ho 229이 전시되고있다>

<레이더를 장착하고 야간비행을 하는 Ho 229의 상상도>

사진 모음

<Ho 229 조종사는 고공비행을 위해 여압복을 착용하였다. 기체 자체 여압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Ho 229으로 미국 맨하탄을 공격하고있다. 물론 상상도이다. Ho 229제작 목적중 하나에도 미국 본토 공격이 포함된다>


https://www.fiddlersgreen.net/models/aircraft/Horten-Ho229.html

http://en.wikipedia.org/wiki/Ho229